Untitled NOTE


“(내가 아는) A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..” 이 말은 맞다. A는 내 앞에선 그런 사람이 아니었을 테니까.
누군가를 알아가면서 호감과 비호감은 교차하기도 한다. 어떤 계기로 그 사람에 대한 신뢰가 생기기도 하고 앞으로 관계하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이 들기도 한다.
A에 대한 나의 호감과 당신의 비호감은, 나와 당신이 다른 만큼, 그리고 나와 당신이 같은 상황에서 A를 겪지 않은 만큼, 늘 같을 수 없고, 늘 이해하고/이해받을 수 없다.
내게 좋은 사람이 다른 누군가에게 꼭 좋은 사람은 아니며,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는 말이다.

0823

누군가 무엇을 주장할 때, 스스로 그것을 굳게 믿고 있거나 믿지 않아도 억지를 부리거나 둘 중 하나일 텐데. 믿는 경우라면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있는 것일테다.
그 확신으로 ‘잘 알지도 못하면서’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경우는, 존경받는 어느 분야의 스승에게도 있다. 누구나 경솔할 수도, 틀릴 수도 있으니까.

요시나가 후미의 만화책 <사랑해야 하는 딸들>의 한 에피소드에서, 남녀가 선을 보았는데 여자는 남자에게 자신의 할아버지 이야기를 한다. 할아버지는 평생 자신이 믿어왔던 것이 틀렸다는 것을 노년에 알게 되셨다고. 남자는 그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인정하실 수 있으시다니 훌륭하신 분이라고 말한다. 정확히 기억은 못하지만 대략 이런 부분이 있었다.

0821

최근 영화 <예감은 틀리지 않는다>를 봤는데 홍보문구와 제목에 비해 불길한 기운으로 끝나지는 않는(?) 영화였고 Charlotte Rampling이 나오는 노년의 인물의 이야기라 <45년 후>와 겹쳐 보였다.
헌데 노년의 주인공이 옛 연인을 카페에서 잠깐 만나고 자리에서 먼저 일어난 그 사람을 몰래 뒤따라 갔던 그 이야기를 자신의 딸에게 하게 되는데 딸이 그 말을 듣자마자 하는 반응은 “아빠, 그건 스토킹이에요."였다.

한국에서, 그 말을 듣고 바로 이런 반응을 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?

0609

“나는 나를 망가뜨리면서까지 예술을 하고 싶진 않아요."라고 19일 전 썼던 말은 즉 “예술을 하지 못하도록 나를 망가뜨리는 것들로부터 나를 지키겠다”는 선언. 

0509-1

바닥을 쳤나. 올라가기 시작했나. 

문제는 언제나 생긴다. 그 자리에서. 각자의 자리에서. 

바닥에 있었나. 

0509

음악은 힘이 크다. 갈팡질팡하다 음악을 바꾸고 새삼 실감. 

0502

작가로서의 삶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건 물론 아니었겠으나 (대체로 돈을 벌지 못하는 삶이라는 건 20대때부터 알고 있었으니) “현실적”인 부분들에 대해 하나씩, 혹은 몇 가지씩 새로이 알아가고 있다. 뭔가 하고 있다는 거겠지, 이것도. 

움직이고 있으니 알게 되는 것일 테니까. 

0423

이 세상에 ‘공짜'는 없고 '쉬운 일'도 없다. 알고 보면 다 그렇더라.
공짜가 생길 수는 있는데 지속되지는 않는다.
행운이 지속되는 것처럼 보일 때는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거지, 계속.

0620

점심을 먹고 작업실로 돌아오는 길에, 두 다리가 서로 교차하며 움직이는 그 감각을 느끼다가 문득, 골반이 좁고 매우 가느다란 하체를 가진 사람이 걸으며 느끼는 감각을 나는 평생 느끼지 못하겠지, 생각했다.
당연한 일이다. 가져보지 못한 것을 알 수 없다.
간혹 누군가 내게 “너는 운동을 하는데도 왜 몸이 약해?“라고 묻는 것도 마찬가지이다.
타고난 키와 외모는 당연히 따라잡기 (거의) 불가능하다 여기면서 타고난 건강은,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인가, 조금만 애를 쓰면 누구나 따라잡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.

0609

내일부터는 작업 시작할 수 있기를. 금요일 이사하고 연휴동안 뻗어있다가 아주 조금 정리를 했는데.. 

오래전부터- 생각해보았다.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절망을 준 것이 뭐냐고 묻는다면, 체력. 

키우고자 나름 애는 쓰는데 그나마 애써서 이정도인거라고 하면 할 말도 없고. 

20대때부터였다, 지금에 비하면 훨씬 더 많이 움직일 수 있었지만. 

고등학교때까진 튼튼한 편은 아니었어도, 그림그리고 학교공부를 못할만큼 약하진 않았으니까. 정해져있는 교과과정이 아니라,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 어찌할 바를 몰랐던 대학시절부터, 체력의 한계를 절감하게 되는 때가 생겨났고, 그 주기는 짧아지고, 체력에 순응하게 되고, 애를 써보다 다시 순응하고 그러는 반복. 

“작가는 몸이 도구인데..” 

이 도구가 말을 안 듣는다. 조심하며 다독여가며 북돋아가며 말을 듣게 할 수밖에 없지만. 

그러기에는 부족하다. 많이.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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